정치에서의 빈 곳

연평도 사건은 역사의 관성(慣性)이 얼마나 맹목적일 수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. 그 사건은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지고 나서 1950년 여름에 일어났던 전쟁이 전쟁 그 자체로서의 우리의 현실은 아니지만, 하나의 고착상태가 되어 여전히 우리의 현실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주었다.

6․25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라는 두 거대 이데올로기 그리고 그 두 이념을 대변했던 두 제국주의 세력(당시의 스탈린의 독트린 역시, 프랑스대혁명의 진보적 계몽사상을 제국주의적으로 전파하려했던 나폴레옹주의의 아류로 전락해 버리지 않았는가)이 한반도라는 지역을 빌려 벌인 전쟁이었다. 그 두 세력을 대신해서 전쟁을 치른 가련한 남북한은, 전쟁이 남긴 실질적이고 가장 핵심적인 문제인 분단의 고통을 고스란히 떠맡을 수밖에 없었고, 여전히 떠맡고 있다. 아니, 사실 남북한 전체가 그 고통을 껴안고 있다는 것은 거짓이며, 그 고통은 그 중 일부에게, 권력의 정치 바깥에 놓인 민중에게만, 가령 이번의 경우 연평도 주민들에게만 위탁된다.

연평도 폭격 현장을 담은 이 일련의 사진들은, 모든 이데올로기와 모든 권력이 효력정지 상태에 놓여 있는 어떤 백색의 공간을, 보다 정확히, 모든 이데올로기와 모든 권력이 내팽개쳐 버린 정치에서의 빈 곳을 보여주고 있다. 거기에는 흐르는 피도, 터져 나오는 절규도, 쏟아지는 눈물도 없다. 이미 모든 피를 쏟아냈고, 이제 절규한 기력도 없고, 이미 눈물은 말라버렸는가?

참화현장을 보여주는 홍상현의 이 사진들은, 흑백의 정지상태가 가져온 기이한 고요함을 현시(現示)시켜주고 있다. 그러나 이 무채색의 정지된 이미지들은 사실은 무너져 내린 사물들이 죽음처럼 우리를 바라보는 장소, 죽음이 부서진 사물들처럼 우리를 바라보는 공간이다. 1950년 여름부터 이 땅에 스며들어 왔던, 지금도 스며들고 있는 죽음이.

이 침묵의 이미지들이 ‘나’를 바라보고 있다. 또한 그 시선에 겹쳐지는 아무것도 모르는 한 어린 소녀의 무심한 시선이……

박준상(숭실대 철학과 교수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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